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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박물관 카타르 1
다문화박물관 카타르 1
초기 역사
카타르에 인간이 정착했다는 최초의 증거는 기원전 6천년 경에 지어진 소규모 농경지, 석기, 장식된 도자기 등의 형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착지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유사한 유형의 도자기가 처음 발견된 유적지의 이름을 딴 ‘우바이드 문명(Ubaid civilization)에 속합니다. 이는 초기 정착민들이 현재 이라크의 지역과 연관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우마이야((Umayyad) 시대인 기원 7세기부터 8세기 중반까지 카타르는 낙타와 말 사육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압바스 왕조(Abbasids, 기원전 8~13세기)의 통치 기간에는 카타르 해역의 풍부한 진주 산지를 따라 진주 산업이 성장했습니다. 카타르 북서부의 요그비(Yoghbi)에서는 우마이야 시대 말기의 고고학적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인근 무르와브(Murwab)에서는 250채의 집과 2개의 모스크, 요새화된 저택으로 구성된 기원전 9~10세기 초 압바스 시대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1497년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희망봉을 통해 인도로 항해하면서 동방으로 향하는 유럽 해상 항로가 확립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유럽인들은 처음으로 걸프 지역에 영구적인 무역 기지를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16세기부터 17세기 초까지 현대 카타르를 구성하는 영토는 오스만 제국, 사파비 왕조, 포르투갈이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카타르가 포함된 최초의 지도 중 하나는 '카타라(Catara)'를 요새로 묘사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카타르 국립도서관 전시되어 있음)였습니다. 포르투갈 여행자들은 1580년대와 1590년대에 카타르를 언급했으며, 1596년 루이스 라자로(Luis Lazaro)의 세계지도집에는 카타르를 하나의 요새로 표현한 내용이 있습니다. 카타르에 대한 주요 언급은 포르투갈이 바레인을 사파비 왕조(Safavids)에게 빼앗긴 1602년 이후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날짜 이후 포르투갈은 카타르를 바레인을 습격하고 걸프를 통과하는 상인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기 위한 기지로 사용했습니다.

카타르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최초의 언급은 155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카타르는 1550년대에 점령된 오스만 제국의 알 하사 지방의 일부로 간주되었습니다. 16세기에는 포르투갈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 큰 경쟁이 있었는데, 특히 포르투갈이 1521년에서 1602년 사이에 점령한 바레인과 관련하여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그러나 1670년대에 바누 칼리드(Banu Khalid) 부족의 셰이크가 알 하사에서 오스만 제국을 추방하면서 카타르에서 오스만의 존재는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