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지
덩굴///실행.기대다.상호
2022
한지에 흑연, 담채, 자석; 화첩
가변크기
이은지 작가는 존재와 의미, 허상과 믿음, 그리고 매체의 변형 가능성과 생성성을 탐구하며, 주재료인 종이가 지닌 유연하고 변용성이 높지만 쉽게 변질되는 속성을 활용해 단단한 대상을 종이로 구현합니다. 그래서 부드럽고 파괴되기 쉬운 종이를 강인한 바위로 만들기도 하고, 변색된 종이를 빛과 시간의 흔적을 품은 작품으로 전환하며 종이의 물성과 가능성을 확장해왔습니다.
이번 출품작은 10년 동안 로드뷰로 관찰한 덩굴의 모습을 열두 장면으로 엮은 작업입니다. 작가는 한 장의 종이를 하나의 찰나로 삼아, 과거 이미지를 차례로 배접하며 흔적을 켜켜이 쌓아갑니다. 이렇게 모인 종이 조각들은 하나의 화첩이 되어 전시장 안에서 가변적으로 펼쳐지고, 덩굴처럼 공간 속에서 새로운 인상을 만들어냅니다.
한지와 담채를 바탕으로 하되 흑연과 자석을 결합해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설치로 확장된 이 작품은, 종이 위에 스며든 번짐과 채색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관찰의 지속성을 드러냅니다. 겹겹이 쌓인 표면은 자연과 기억이 중첩되는 과정을 품고 있으며, 덩굴의 성장과 변화는 화면 속에 머무르지 않고 공간에서 재배치되며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냅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전통 회화가 지닌 ‘대상 재현’의 틀을 넘어, 관찰과 기록, 변형을 거쳐 수묵을 시간과 공간, 그리고 관계가 교차하는 현대적 매체로 새롭게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