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보연 Ko Boyun
켜켜한 여성의 시간 2
천, 솜, 바느질
가변크기
고보연 작가는 지난 30여 년간 치유, 재생, 돌봄, 여성성, 공동체, 그리고 관계 맺기 등을 주제로 작업해온 설치 예술가입니다. 티백, 헌 옷, 전단지, 종이컵 등 일상 속에서 쉽게 버려지는 재료들을 엮고 꿰매는 손작업을 통해, 개인의 기억과 사회적 감각을 되살리는 예술적 실천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의 삶에 깃든 반복적인 노동과 정서적 시간을 포착하여, 그로부터 연대와 회복의 메시지를 끌어냅니다.
<켜켜한 여성의 시간 2>에서 작가는 머리카락을 모티프로 삼아, 자라고 또 자라며 감정을 품어온 여성의 시간을 시각화합니다. 재생 천과 헌 옷으로 엮어낸 이 작업은 수많은 여성들이 입고 살아온 시간들을 다시 반복하고 연결하는 과정으로,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응축된 감정의 결을 드러냅니다.
작품 속 실은 탯줄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생명을 잇는 최초의 연결임과 동시에, 여성들이 감당해온 출산과 육아, 돌봄의 상징으로 읽힙니다. 자르고 잇고 엮는 반복 행위는 고통과 침묵, 치유의 몸짓이며, 옷의 외형 너머에 존재하는 ‘살아온 시간’을 드러내는 작가만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천과 천이 만나는 접점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의 이야기가 자라나고, 이로써 개인의 기억은 집단적 서사로 확장됩니다.
결국 <켜켜한 여성의 시간>은 침묵 속에 견뎌낸 시간들, 잊히거나 삭제되었던 여성의 생애와 정서를 회복하는 작업입니다. 고보연의 조형적 실천은 단순한 오브제의 제작을 넘어, 개인의 내면 치유에서 사회적 회복, 공동체적 연대로 이어지는 미술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