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보연 Ko Boyun
부드러운 방
2024
폐지, 폐천, 솜, 바느질
가변크기
<부드러운 방>은 고보연 작가가 오랜 시간 천착해온 여성성과 생명성의 주제를, 보다 넓고 감각적인 조형 언어로 풀어낸 설치작품입니다. 이불처럼 푹신하고, 산처럼 둥글며, 가슴처럼 포근한 형태들이 바닥과 벽면을 따라 퍼져 있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여성의 신체 일부인 유방을 상징적 형태로 다루면서, 그것이 생명을 품고 키워내는 장소로 확장되는 과정을 시각화합니다.
그 덩어리들은 육체이자 풍경이며, 그 안에는 수많은 품과 시간이 포개져 있습니다. 출산과 양육, 돌봄과 살림의 기억들이 중첩된 공간은 때로 따뜻하고, 때로는 무겁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엄마’라는 존재도 처음부터 단단하지 않았으며, 삶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다고—그 무수한 시간들 위에 쌓여, 마침내 방 한 칸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이 작품에 사용된 재료들은 남겨지고, 잊히고, 때로는 외면당했던 헌 옷들로 겉으로는 정리되지 않은 파편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 안에는 살아온 몸의 기억과 관계의 흔적이 켜켜이 배어 있습니다. 물건은 그저 물건이 아닌, 누군가의 삶이 머물다 간 자리입니다.
이처럼 <부드러운 방>은 보드랍고 느슨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삶을 감당해온 이들의 숨결과 서사가 고요히 녹아 있습니다. 이 방은 보호받기보다 보호해온 몸들을 위한 쉼터이며, 사회적 구조 속에서 종종 사라지거나 잊혀졌던 여성적 경험들이 되살아나는 감각적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