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
새로운 세계
2024
한지에 먹, 호분
163x130cm
박지영의 작업은 작업실 한편에 모아둔 먹 찌꺼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굳어버린 찌꺼기는 작가에게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라, 시간과 환경이 만들어낸 고유한 조형이자 쓸모와 무용, 현재와 과거가 맞닿는 경계에 놓인 존재였습니다. 초기에는 이 찌꺼기들을 작품 표면에 직접 부착했지만, 최근에는 그 형태가 지닌 추상성을 회화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계〉의 화면 속 형태는 콜라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먹과 호분, 아교로 그려진 것으로, 이는 관람객이 한 걸음 다가와 표면의 경계를 살피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날카롭게 찢긴 듯한 선과 부드럽게 퍼진 덩어리들이 서로를 가로지르고 겹치며, 사라진 사물의 기억과 잔상을 시각적으로 떠올리게 합니다.
박지영 작가는 전통 수묵의 재료와 여백 개념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재현의 대상을 자연 풍경에서 사물의 잔여와 추상성으로 옮겨옵니다. 〈새로운 세계〉는 전통 수묵의 미학과 현대적 시선이 만나는 자리에서, 버려진 것에서 어떻게 새로운 형상이 태어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전통과 현대, 물성과 개념이 서로 스며드는 지점을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