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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 마고, 2015
정민기, 마고, 2015

정민기 Jung Mingi
마고 Mago
2015
광목과 솜을 겹쳐서 재봉틀로 드로잉, 먹과 아크릴 채색
194x234 cm


정민기 작가는 재봉틀을 회화적 도구로 삼아, 바늘과 실로 인물과 서사를 그려나가는 독창적인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물감 대신 천을, 붓 대신 발로 구동하는 재봉틀을 사용하는 작가의 방식은 ‘그리기’와 ‘잇기’, ‘접기’와 ‘펼치기’라는 행위를 넘나들며, 시간과 기억, 존재의 단층을 직조하는 하나의 퍼포먼스로 확장됩니다.

작가는 오랜 시간 기억과 신화, 역사적 서사를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풀어내며, 그것들이 오늘날의 감각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일 수 있는지를 탐색해왔습니다. 특히 <마고>는 개인적 기억과 신화적 상상, 그리고 모계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직조된 회화이자 제의적 풍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품 속 인물인 ‘마고’는 한반도와 제주도를 창조한 존재로 전해지는 여성 창조신이자, 작가가 할아버지로부터 구전으로 들었던 설화 속 인물이기도 합니다. 할아버지의 입을 통해 전달되던 이야기, 그 목소리의 기억, 그리움 속에 떠오른 낯선 초상. 이 모든 것이 천 위에 포개지고, 겹쳐져 한 장의 이미지로 새겨졌습니다. 작가는 기억을 따라 선을 놓고, 그 선을 따라 이야기를 엮으며, 손끝에서 태초의 어머니, 마고의 신화를 다시 불러냅니다.

<마고>는 단순히 설화 속 인물을 형상화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어머니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끊겨 있는 자리에서 시작된 질문이자, 모계의 시간에 대한 복원의 시도입니다. 원단을 자르고 조각을 맞추는 과정은, 작가가 자신의 기원을 추적하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해온 여성들의 몸과 시간, 기억의 대지를 다시 그려내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짙은 밤, 산을 밀어내고 대지를 휘젓던 마고의 모습은 억압된 역사의 밑바닥에서 솟아오른 생명의 기운처럼 화면을 채웁니다. 온갖 생명들이 그녀 곁에 모여 춤추고 노래하며 세계의 재창조를 축복하는 이 장면은, 어쩌면 모계적 윤회의 한 장면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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